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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제약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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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조절과 비만, 식욕은 내 것이 아니다
등록일
2023-04-20
작성자
바이오제약공학과
조회수
82

현대인의 비만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1998년 우리나라 성인의 비만율은 26%였는데, 2020년에는 38%까지 늘어났지요.[1] 같은 기간 고도비만율은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기간 동안 성인 비만율이 30%에서 42%로 증가하는 등,[2] 비만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살이 찌고 빠지는 것은 먹은 열량과 소비한 열량의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통 생각합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인다면 살은 빠지기 마련이고, 날씬한 몸이든 비만한 몸이든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라는 사고방식이지요. 자연히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들은 음식의 무게를 재어 섭취 열량을 제한하고, 트레드밀을 타서 소비 열량을 늘림으로써 체중을 줄이려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온몸으로 경험했듯이, 열량 계산을 통한 체중 조절은 효과도 극적이지 않거니와 유지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비만 연구자들이 쌓아온 증거에 따르면, 열량 계산은 실제로 장기적인 체중 조절에 거의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몸은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복잡한 호르몬 작용을 통해 열량의 섭취와 소비를 제어하는데, 이 호르몬계의 오작동이 바로 비만의 원인이라는 겁니다. 체중의 ‘세트 포인트’를 바꾸지 못한다면 어떤 다이어트 비법을 시도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본인의 세트 포인트로 회귀한다는 거죠.
 




열량 계산과 조절이 체중 감량과 무관하리라는 핵심적인 증거는 2012년에 발견되었습니다.[3] 인류학자인 헤르만 폰처 교수는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하드자 부족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열량 소비를 추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피험자의 일일 에너지 소비량을 정확히 측정하려면 호흡으로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전부 포집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사냥이나 채집 활동을 하는 하드자 부족민의 열량을 측정하는 데는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지요. 

연구진은 대신 피험자에게 방사성 동위원소로 구성된 물을 마시게 하고 소변을 받아 실제 소비 열량을 분석하는 이중표지수법(doubly labeld water method)을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인 물 분자는 원자량이 16인 산소 원자와 원자량이 1인 수소 원자로 구성되는데, 이중표지수법에서는 원자량이 18인 산소 동위원소와 원자량이 2인 중수소로 구성된 물을 사용합니다. 비싼 물질이긴 하지만, 피험자의 소변에서 검출된 중수소와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계산해 보면 대사 과정에서 실제 소비된 에너지의 총량을 대단히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일일 총 소비 열량을 측정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 중 하나이지요.

하드자 부족민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 대부분을 사냥감을 쫓거나 식물을 채집하며 돌아다닙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는 현대인과는 활동량이 많이 다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드자 부족민의 일일 소비 열량은 같은 체중의 현대 미국인과 거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험 기간 동안 부족민들은 GPS 추적 장치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이들의 일일 이동 거리도 수집할 수 있었는데, 하루에 움직인 거리와 일일 소비 열량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없었다고 해요. 하루에 천 걸음도 걷지 않는 사람과 2~3만 걸음을 걷는 사람이 소비하는 열량이 같았던 겁니다.
 


하드자 부족민과 서구인의 열량 소비를 비교한 표입니다. 출처: PLoS ONE 7, e40503 (2012).


메커니즘이 아주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연구자들은 일일 에너지 소비의 “예산”이 개체마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모델 동물 실험에서도 운동량을 늘렸을 때 체내의 염증 반응이 감소하고 배란 주기가 늘어나거나 세포의 재생이 늦춰지는 등의 영향이 관찰됩니다. 반대로 운동량이 감소하면 염증 반응 등 내부 관리 활동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고, 그 결과 소비 에너지의 총량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인체가 에너지 보존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 운동량을 극단적으로 늘리면 소비 열량이 높아지기는 합니다. 폰처 교수 연구진은 북아메리카 대륙을 달려서 횡단하는 울트라마라톤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이중표지수법 실험을 수행한 적도 있는데요, 하루에 40km 이상을 달리는 이 선수들은 매일 6천 칼로리 정도를 소비했다고 합니다.[4] 하지만 울트라마라톤 선수가 아닌 현대인이 웬만큼 활동적으로 생활해 봤자 2~3천 칼로리 수준의 “열량 예산”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기에 더불어, 우리의 식욕은 다른 많은 욕구들처럼 호르몬에 의해 대부분 조절됩니다. 호르몬 작용과 의지만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하루이틀이라면 모를까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지요. 식단 조절이나 유산소 운동을 통해 몇백 칼로리쯤 덜 먹고 더 쓴다 하더라도 실제 총열량 소비는 크게 바뀌지 않는 데다가 이를 유지하는 것마저도 어려우니, 장기적으로 우리의 체중은 몸에 새겨진 세트 포인트로 회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까지 비만 연구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위 절제술이나 위 우회술과 같은 비만대사수술(bariatric surgery)이 세트 포인트를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식이나 운동량 조절로는 세트 포인트를 바꿀 수 없고요.

최근에는 중증 비만이 당뇨병처럼 호르몬 대사의 이상에 기인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 대부분의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거나 인슐린 수용체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이처럼 비만도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계에 이상이 생겨서 세트 포인트가 자연스러운 수준보다 높아진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1형과 2형 당뇨병이 구분되는 것처럼 비만도 발생 원인에 따라 다양한 하위분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접근이지요. 

최근 영국에서 승인받은 비만 치료 약물인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가 식욕 조절 호르몬 관점에서 비만에 접근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식욕 조절에 관여하는 글루카곤양 펩티드 1 (GLP-1) 수용체에 작용하여 식욕을 조절하는 약제입니다. 2021년에 수행된 임상 3상에서는 1년 이상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하며 추적한 결과 실험군이 평균 14.9%의 체중을 감량하고 유지했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5] 다만 호르몬 유사체라는 특성상, 투여를 중단하면 다시 서서히 체중을 회복하기 때문에 체중을 유지하려면 복용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네요.

반대로 호르몬 작용에 간섭하여 체중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도 많습니다. 오비소겐(obesogen)이라고 부르는데, 비스페놀 A나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과불화화합물(PFAS) 등이 대표적입니다. 오비소겐을 쥐에게 투여하면 같은 열량을 섭취한 쥐들도 체중이 유의미하게 변화한다는 보고가 많이 있었고, 사람의 혈중 PFAS 농도와 체중 조절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도 나온 바 있습니다. 최근 비만율이 증가한 원인도 생활 습관 변화가 아니라 오비소겐 노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6]

학계의 비만 연구와 대중의 인식 사이에는 아직도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비만한 사람은 의지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에 시달립니다. 살을 빼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식사를 줄이라는 조언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고요. 하지만 기근에 시달리며 진화한 인체는 열량 계산기를 두드려서 체중을 조절할 수 있는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열량 소비의 예산을 맞추는 내부 기전과 호르몬을 통한 식욕 조절 탓에 의지만으로는 감량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지요. 개인적인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든, 인구 집단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서든, 비만을 대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출처: [BRIC Bio통신원] [여우원숭이가 읽어주는 오늘의 과학기술] 체중 조절과 비만, 식욕은 내 것이 아니다 (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50546 )